조국을 빼앗긴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어를 잃어버린 작가는 어떻게 하루하루를 지탱해야 했을까? 김사량은 일제 강점기 이러한 질문 앞에서 갈등하고 번뇌해야 했던 작가다. 많은 이들이 붓을 꺾었고, 또 많은 이들이 변절을 했다. 이미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우리의 서글픈 역사다. 1945년 5월 김사량은 조선인 출신 학도병을 위문하는 단체의 일원으로 중국 북경으로 간다. 그곳에서 탈출에 성공한 김사량은 곧바로 태항산의 항일 근거지로 향한다. 이때의 여정을 꼼꼼히 적어 두었다가 훗날 발표한 것이 ‘노마만리(駑馬萬里)’이고, 이때 들었던 조선의용군의 ‘호가장전투’를 소재로 쓴 희곡이 바로 ‘호접’이었다. 그는 ‘노마만리’ 곳곳에 자신의 나약한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을 피력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많이 배우자. 그리고 많이 쓰자.’ 김사량의 선택은 저항이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쳐 저항한 거의 유일한 작가였다. 비록 정치적인 이유로 남과 북 모두에게서 외면을 받고 말았지만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개인에 대한 평가를 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조국을 빼앗기고 언어를 빼앗기고 자유를 빼앗긴 식민지 현실을 살아야만 했던, 그리고 작가로서 시대와 예술에 대해 고민해야만 했던 그의 모습을 통해 현재 우리의 시대와 예술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보기를 바랄 뿐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2011년 뉴욕 월가 시위(Occupy wall street)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노마(駑馬:어리석고 쓸모 없는, 걸음이 둔한 말)’ 김사량의 이야기를 통해 사유의 단초를 얻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8월8일부터 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연극<노마일기>는 「노마만리」,「호접」,「김사량, 작품과 연구 1,2,3」,「김사량 평전」,「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과 그 외 12편의 논문, 영상기록, 웹사이트, 사진 등을 리서치하며 항일투쟁작가 김사량의 삶과 그가 남긴 기록들을 쫓아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기록에 대한 이야기다. 기억이라는 것은 오래된 폴더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며 기억의 복원은 ‘공감’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시대의 간극을 좁히려 애쓰지는 않는다. 그 간극에서 발생한 혼란과 공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은 역사를 다시 기록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