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데일리
교육출판
[신간] 어린이 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
윤성환 기자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5.03  20:03:3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스타북스가 ‘어린이 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을 출간했다고 밝혔다.

문화 예술을 사랑한 인문학적 진보주의자, 어린이운동으로 민족의 미래를 준비한 독립운동가,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가진 행동가, 감수성 풍부한 따듯한 청년, 조국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열정을 치열하게 불태운 소파 방정환.

◇우리는 방정환을 너무 몰랐다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날의 창시자’라는 수식어로 인해 진면목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안타까운 위인이다. 33년의 생애 동안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다해 그가 구하고자 한 일은 나라의 독립이었다. 하지만 전방위적 실천가였던 그에게는 단 하나의 수식어만을 대표적으로 붙일 수가 없다. 방정환을 하나의 ‘주의(ism)’ 안에 집어넣기에 그의 깨어 있는 정신과 포용성은 너무도 넓었기 때문이다.

방정환은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이 주체성을 잃지 않고 독립을 반드시 이루어 내도록 인권운동을 했을 뿐 아니라, 폭넓은 문화적 감수성으로 사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예술 활동도 적극적으로 했다. 그 방법으로 어린이운동과 ‘잡지’라는 매체를 선택했다.

이와 같은 소파의 일생을 치우치지 않게 그리기 위해, 저자는 소파의 아들과 소파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소파의 일본 유학지를 방문했음은 물론 1920~30년대의 신문과 잡지를 거의 확인하고,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도서관, 중앙대도서관, 강원대도서관, 천도교회 자료실 등을 몇 번이고 들락거렸다. 그러면서 소파는 투쟁보다 화합을, 이념보다 인간애에 비중을 더 크게 둔 운동가였음을 분명하게 확인해 냈다.

◇어린이날의 창시자라는 이유로 진면목을 인정받지 못한 거인

‘어린이 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은 제한된 틀 속에 가둘 수 없이 ‘큰 생각’을 실천한 ‘큰 사람’ 소파 방정환의 일대기이다. 책에는 대가족제도·식사 준비·전통 의복과 주택의 개선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천한 실용주의자 방정환, 사회를 개혁하고자 사회주의를 받아들였으나 사상에 구속당하지 않은 진보주의자 방정환, 남녀가 다르지 않으며 계급에 따라 인간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평등주의자 방정환, 계급주의의 모순으로 희생당하는 민중을 염려하고 나약한 위치에 있던 여자와 아이들을 위하고자 애쓴 박애주의자 방정환, 서구의 다양한 문학작품을 소개해 민중의 자주·독립·자유의 사상을 인식시키고 그 지평을 넓히고자 한 열정적 문화 운동가 방정환, 전 세계 20개국이 참가한 ‘세계아동예술전람회’ 등을 개최한 풍부한 콘텐츠를 가진 벤처형 문화 사업가 방정환, ‘비행사 안창남 귀국 비행’ 같은 온 민족이 열광하는 쇼를 추진한 이벤트 기획자 방정환, ‘은파리’라는 풍자문학을 통해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불평등 구조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가진 자와 지식인들의 허위의식과 세태를 칼끝처럼 날카롭게 비판한 사회비평가 방정환, ‘개벽’, ‘어린이’, ‘신여성’ 등 10개의 잡지를 발행한 탁월한 저널리스트 방정환, 어린이날 선전문·소년보호운동 문구·잡지 광고 문구 등을 완성한 명카피라이터 방정환, 매해 70여 회 이상 생애 통산 1000번 이상의 동화구연대회·연극 공연·강연회를 진행해 청중을 사로잡은 명강사 방정환, 중앙보육학교와 경성보육학교에서 아동 유희를 강의한 훌륭한 교육자 방정환 등 하나의 주의로 담을 수 없는 소파 인생의 장대한 감동을 담고 있다.

작가는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 어린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지 말라던 소파의 소망은 아직도 유효하다. 제게 방정환은 항상 리틀 빅맨이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살다 간 영원한 조선 청년이다. 선각자 체취가 강하게 풍겨 오는 멋진 멘토”라고 말했다.

◇소파의 어린이날 선언은 아직도 유효하다

·어린이날은 왜 단순한 잔칫날이 아니라 독립운동과 맥이 닿아 있는가

소파의 어린이(소년)운동에 대한 기본 인식은 독립운동을 촉발하고자 함이었다. 당시 조국의 현실은 어른을 상대로는 어떠한 운동도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었다. 극도의 탄압에 못 이겨 우리 민족의 양 어깨는 축 처져 있었고, 그들이 현실에 무너져 국권피탈에 순응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행동’을 해야 했으나 일본인들의 날카로운 경계의 눈빛은 삼엄했다. 그랬기에 겉으로는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평범한 단체인 양 보이게끔 했던 것이다.

어린이를 운동의 주인공으로 한 또 다른 이유는 짓눌림과 가난 속에서 웃음을 잃은 슬픔 많은 어린이가 처한 현실에 대한 뼈저린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리고 약해서 가장 다치기 쉬운 어린 시절을 지켜 줌으로써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건강한 국민으로 성장하길 바랐던 것이다. 아이들의 주인 정신이 이 나라를 지키는 힘으로 커지리라 믿었던 것이다.

아직 현실에 찌들고 무기력해지지 않은 아이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걸고, 어른된 자들이 그들을 돌보고 지켜 준다면 국권 회복에 기대를 걸어 볼 수 있다는 의지였다.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소파와 민주적 인권 옹호와 일제 저항운동의 방편으로 소년운동을 자각한 색동회 인사들의 사상이 결합해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어린이날’ 제정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소파와 천도교 조선소년운동협회가 발표한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은 세계 최초의 아동인권선언으로 평가받고 있으니 그 의미가 더욱 커진다.

9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소파가 외친 ‘어린이 선언’은 유효하다. ‘사람의 권리’라는 기본이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는 나라의 주권 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이었다면 21세기 초인 오늘날에는 주체성을 찾아내기 위한 독립운동이 펼쳐져야 할 시점이라 하겠다.

◇방정환이 어린이운동에 투신하게 되는 과정

·그의 사상적 변모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소파는 10세까지는 집안이 부유해 어른들이 경제에 대한 개념을 가르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완전히 몰락하면서 하루 먹을 쌀이 없어 꾸러 다니고, 땔나무를 해다 팔고, 학비가 없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극빈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가 좌절하거나 극단적인 사상을 갖거나 편협한 안목을 갖지 않았던 데는 소파의 낙천성, 삶에 대한 열정, 천도교도였던 가족의 영향이 있었다. 소파의 아버지는 천도교도로서 동학혁명에 적극 참여했고, 소파는 그 바탕에 있는 민족적 주체성과 자긍심을 자양분으로 흡수하며 자라났다. 소파에게 생명의 소중함이란 공기와도 같았을지 모른다.

고작 7살 때 스스로의 의지로 신식학교를 선택해 다니고, 10살 때는 토론 모임을 만들어 아이들을 이끌었으며, 12세의 나이로 소년유년군을 조직해서 160여 명을 휘하에 둔 총대장을 지낸 일 등은 유년 시절부터 남달랐던 소파의 비범함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따듯한 감수성을 지녔던 소파는, 일제 식민 치하에서 군국주의를 숭상하며 학생들을 군인처럼 훈련하는 교육 행태를 체험하며 ‘인권’의 중요성을 가슴에 새기게 됐을 것이다. 인권과 자유의 중요성을 느끼며 성인이 된 소파가 독립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앞둔 순간 “내가 이렇게 간다니 창피해”라고 한 말 속에 그의 한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민족의 큰 스승과의 만남

·의암 손병희와 만해 한용운

소파는 어린 시절 당대의 문학가들이 펴낸 잡지를 보며 자신의 막연한 뜻에 실체를 더하고, 문화가 사람의 정신을 깨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달았다. 그러면서 소파의 무의식 속에 문화 운동에 대한 열망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소파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품을 이와 같은 잡지에 투고하면서 대작가가 되고자 했다. 그 자신이 책에서 눈부신 신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원고를 투고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스승 만해 한용운과의 만남도 시작된다. 소파는 제2의 고향을 만해의 고향인 충남 홍성으로 여길 만큼 한용운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또 하나 소파의 인생을 가르는 중대한 인연은 천도교 교주 의암 손병희와의 만남이다. 나중에는 손병희의 사위가 됨으로써 나라의 독립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하던 소파에게 분명한 길이 열리게 된다.

사람에게 아무리 큰 뜻이 있다 해도 기회를 얻지 못하면 좌절하고 만다. 그런데 소파는 당대의 대표적 인물인 만해와 의암 선생을 만났으니 가히 하늘이 인생의 문을 열어 주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물론 거기에는 소파의 따듯하고 순수한 진심, 열린 사고, 그리고 열정과 꾸준한 노력이 우선하고 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HOT 이슈
1
닥터올가 여성청결제, SSG 기획전 참여_
2
KFC, 프리미엄 버거 & 치킨버켓 할인 프로모션
3
일동후디스, 성인용 초유 스틱 ‘초유의 힘’ 출시
4
육수당, 가을 시즌 맞아 ‘뚝배기불고기’ 선보여
5
제주신화월드, MBTI 유형별 맞춤 호텔 패키지
6
풀무원, ‘가쓰오우동’ 3종 출시
7
라엘, 자사몰서 가을맞이 프로모션
8
공차코리아, 초콜렛 3종 신메뉴 출시
9
쿠캣마켓, '띵커바디’ 광고모델로 미주 발탁
10
컬럼비아, 남주혁과 함께한 겨울 캠페인 영상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금천구 가산동 426-5 월드메르디앙2차 1010-3  |  대표전화 : 010-9964-4101  
팩스 : 02)362-9036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328   |  발행인 : 윤성환  |  편집인 : 이동로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성환
Copyright © 2011 우먼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sh@woman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