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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개와 하모니카
윤성환 기자  |  ysh@woma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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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1  09: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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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저물 듯 저물지 않는』 등의 작품으로 한국의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에쿠니 가오리의 최신 단편 소설집. 공항 로비에서 만나게 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순간들을 선명하게 그려낸 표제작과 함께 총 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제38회 가와바타 야스나리 수상작에 빛나는 표제작 외에도 애인에게 이별 통고를 받고 아내가 잠들어 있는 집으로 돌아온 남성의 심경 변화를 담담하게 그리는 「침실」, 부부 사이의 작은 거스러미를 살며시 들여다보는 「피크닉」 등이 수록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한 계속 안고 가야 할, 따스한 고독으로 충만한 여섯 개의 여로를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소개한다.

『개와 하모니카』에 실린 각기 다른 여섯 편의 이야기에는 시대도 국적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찰나의 쓸쓸함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중간에 수록된 「늦여름 해 질 녘」에서는 시나가 애인의 일부를 먹게 된다. 바다 맛이 나는 얇게 벗겨낸 피부를 먹고서 ‘내 몸의 일부는 이타루 씨다’라고 생각한다. 애인 또한 그녀를 사랑스럽게 여기며 주머니칼로 정성껏 자신의 살갗을 벗겨내어 시나에게 먹인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오히려 두 사람이 남남지간임을 느끼게 만든다. 피부를 서로에게 먹여주듯 사람과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 서로의 내면을 침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이란 철저하게 혼자이며 의지할 데가 없다는 사실 또한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표제작이자 제38회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수상작인 「개와 하모니카」에서는 아내와 딸을 마중하러 봉제인형 햄과 함께 나리타공항으로 차를 모는 남자의 조금 지친 모습에서 지금껏 살아온 시간의 윤곽을 엿볼 수 있다. 「피크닉」에서는 결혼한 지 5년이 되도록 남편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아내가 남편과 함께 파란 잔디밭에 드러누워 평화로운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러나 같은 체험이 쌓여갈수록 더욱더 기댈 곳이 없다는 사실이 두드러지는 것은 무엇 때물일까? 이 책에서 등장인물들은 누군가가 없어져서 쓸쓸한 것이 아니다. 즉 대상이 있고 없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연인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고독한 것이며, 숨 쉬며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체념마저 하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뒷부분에 수록된 「알렌테주」를 읽다 보면 작품 속의 찌는 듯한 여름이며 숙소의 먼지가 느껴질 것이다. 다소 생기 없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마저 들리는 듯한 생생함에 독자들은 먼저 감탄을 하게 된다. 어쩐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가족. 끊임없이 가출을 시도하는 말라깽이 소녀 엘레나. 소설은 이 여자아이에 대해 그다지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지 않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실패로 끝날 가출을 되풀이하는 아이의 모습이며 인생행로를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꽃들이 심어진 정원 앞에서 살짝 그늘진 눈빛을 하고서 가위를 쥔 엘레나의 모습이 눈앞을 스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연인 사이인 마누엘과 루이스는 조금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그 공간 자체를 비아냥대듯 “뭐 어때, 아무 문제없어” 하고, 오직 둘 사이에서만 통하는 말을 주고받는다. 대화의 내용은 비어 있고 둘 사이에는 리듬과 음정만이 오가는 것으로 이야기에 내용은 아무 상관이 없고 오직 순간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순간의 공유는 비단 연애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를 테면 「개와 하모니카」 편에서 노부인이 외국인 청년과 헤어질 때 소리내어 말하는 “오모니”와 같이 의미가 누락된 음성과도 겹친다. 분명 서로를 사랑하고 있으련만 계속 엇갈리는 마누엘과 루이스가 길가에서 목격한, 나란히 늘어선 여덟 명의 할머니들 역시 마찬가지 의미를 지닌다. 비슷비슷한 날염원피스에 똑같은 자세, 동일한 간격으로 늘어 서 있다. 그 할머니들의 모습을 ‘본다’는 사실을 공유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 똑같은 것을 본다. 그리고 다시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한다. 그와 같은 순간의 연속이 흘러간다. 그렇기에 기댈 곳 없는 삶의 쓸쓸함이 문득 마음 편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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