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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그리다] 이영은展 ' Visual Sense'
오주영 기자  |  ojy-womandai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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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3  13: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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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다. 누군가 한쪽에 벗어 놓은 혹은 그저 내려놓은 옷들이 섞여 있는 장면이다. 마구잡이로 헝클어져있는 모습은 아니다. 적당하게 서로가 닿아있고 섞여있다. 옷의 일부가 확대되어 화면을 가득 메우기도 하고 옷들이 놓여있는 장소가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옷을 본 관객은 아마도 사람의 흔적을 찾게 된다. 누가 내려놓았는지 혹은 벗어 놓았는지, 그리고 누구의 옷인지 궁금해진다.

이영은의 회화에서 옷은 먼저 기호로서 해석된다. 지표이자 상징으로서 옷은 부재하는 주인을 가리키고 동시에 그 소유자의 성, 나이, 직업이나 국적, 종교, 사회적 위치와 계급 따위를 연상시킨다. 미술사에서 옷은 초상화 속 인물을 해석하는 기호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화나 역사화 등에서도 당시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른 도상으로 해석되어 왔다. 동시대의 시각 이미지에서도 옷은 찢기거나 태워짐으로써 의사 전달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문양이나 재질에 따라 혹은 제조업체에 따라서도 그 종교적, 역사적 의미들이 부여되기도 한다.

옷의 종류와 놓인 형태, 천의 색이나 질감 등은 그림 속 대상을 모사된 ‘실제적인 것들에 대한 기호’로서 해석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내 옷의 소유자들을 소환하려 시도한다. 관객은 옷의 주인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간단한 추측들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해석은 일정한 틀을 넘지 못한다. 이영은의 회화 속에서 옷은 인체를 덮었던 껍질로서 그 대상을 불러들이지만 그 추측들이 끝나고 나면 마치 표상체로서의 기능을 다 한 듯 그대로 화면에 정지되어 있다.

이는 여전히 옷이 주인을 가리키는 지표로서 작동하지만 회화 내의 이야기들은 최소화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 작업들이 연출된 장면, 즉 공간성이 드러나는 배경 위에 신체가 사라지고 남은 옷들의 사건처럼 보였다면 이번 전시의 신작들은 주로 옷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덕분에 화면의 연출을 통해 전달되던 메시지들은 이제 관람자의 해석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사라져버린 신체, 옷들이 놓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지고 주인 없이 놓인 옷에 대한 표면이 전시된다.

다른 대상들을 제거함으로써, 옷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기호로 제시되기보다는 인체를 덮은 외형으로서의 특징이 부각된다. 회화 속 옷들은 무질서하게 놓여있는 듯도 보이지만 일정한 옷의 형상과 구도는 옷이 덮었을 신체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옷들의 접촉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 내면의 교류와 소통을 꿈꾸지만 마치 옷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껍질은 인간과 외부세계 사이에 경계면을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옷의 특성을 통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듯 보인다. 그려진 옷들은 사람이 스스로를 감추고 내보이는 방식, 즉 우리가 외부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드러낸다. 외면의 껍질들이 그 대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또한 껍질을 포장한다.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껍질은 외부세계와 만나는 시작점이 되지만 결국 진실은 흐려지고 소통의 불가능성을 이미 내재하게 된다.

이전의 「Hug」 연작들처럼 마치 안겨 있는 듯 하거나 사람의 동작을 연상시키는 연출은 생략되었지만 오히려 군집과 같은 구도나 밀착되어 있는 형태는 대상의 접촉 정도를 더 강하게 보여준다. 이 접촉의 순간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이다. 가족, 친구, 연인과의 접촉이나 스쳐지나가는 군중들과의 직접적인 접촉 뿐 아니라 이제는 카메라에 담겨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과 접촉한다. 관계, 즉 외부와의 접촉 경로는 수없이 많아졌지만 그 순간들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즉 여전히 우리가 보고/보이고 있는 것은,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며 만들어간 관계들은 그저 옷과 같은 껍질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문들이 작가의 회화를 이룬다. 이영은의 회화는 옷을 통해서 의미들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세계의 모습은 그저 옷과 같은 표면의 대상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 대상들의 세계와 자신과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한 회화적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작가는 외부세계와 맺는 관계의 매개체로 기능하는 옷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가시화하기 위해 대상으로서 옷을, 방법으로서 회화를 선택한 것이다.

그 외부세계의 경계면에 대한 작가의 태도, 즉 본질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통해 관계를 드러내려는 태도는 겹쳐있는 천들의 표면과 그 주름 그리고 그림자에서 찾을 수 있다. 표면에 불과할 대상들을 회화에 옮겨놓는 시도들이 천의 주름과 그림자로 관객 앞에 제시된다. 회화 앞에 선 관객은 그림 속 옷에 대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각자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선택한 해석의 과정 속에 이영은의 회화가 갖는 의미가 있다. 그 해석의 순간들, 그 기억의 과정이야말로 작가가 옷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과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관계의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영은展  ' Visual Sense'가 6월6일부터 17일까지 갤러리 그리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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