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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간 서:로] 지미킴展 '무정부주의적 언어'
오주영 기자  |  ojy-womandai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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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3  12: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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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주의적 언어는 ‘보다’와 ‘읽다’라는 서로 다른 두 행위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보다’라는 행위는 어떤 해석이 개입되지 않은 채 눈으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하고, ‘읽다’라는 행위는 어떤 해석이 개입된 상태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사유의 과정에서 한가지 질문을 해보고자 했고, 그게 작업의 시작이었다. 지금 이 글, 그리고 전시를 통해 한가지 질문을 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읽는다’. 단순하게 어떤 특정한 단어,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물, 어떤 모습, 어떤 행위를 가볍게 응시하는 것에서부터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까지 우리는 읽는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사물, 어떤 모습, 어떤 행위를 ‘보다’라는 행위를 통해 인식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린 것 같다.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 그것의 시작점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의 읽는 행위는 언어를 통해 우리의 교집합이면서 동시에 그 역인 관계를 형성시키고, 이런 애매모호한 관계성을 가지는 언어의 특성에도 우리는 교집합의 영역을 통해 소통을 한다.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용도 의미론을 통해 설명되었던 부분이지만, 단순히 그것으로 언어 자체를 받아들이기에는 스스로의 의심이 더 커졌던 것 같다.
불확실성과 다의성을 가지는 것은 언어가 가지는 고유한 완전성이며, 그런 불확실성과 다의성은 우리의 읽는 행위, 그리고 해석을 통해 끝없이 확장한다. 어떤 사물, 어떤 모습, 어떤 행위에 부여된 끝없는 의미는 우리의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이며, 언어를 통해 부여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그 의미부여의 도구로서 언어를 사용한 것이며, 우리의 의미부여를 전부 담기에 언어는 충분한 그릇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그 불충분한 그릇이 우리의 교집합이 되었으며, 그 교집합이 형성되는 프레임 안에서 우리는 표현할 뿐이다.
무정부주의적 언어를 통해 고의적으로 언어의 불확실성과 다의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언어를 언어만의 고유한 완전성에 가깝게 사용해보는 것이다. 마그리트가 언어를 통해 역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칼리그람의 해체를 통해 표현했다면, 각자의 언어에 대한 칼리그람을 복원해서 표현해 보는 것, 언어가 가지는 상대성과 그 기준에 대한 것, 그리고 그 다의성을 언어로 표현해보는 것이다.
언어는 과연 우리를 담아내기에 적합한 도구인가? 애석하게도 이것에 대한 질문도, 답변도 모두 언어, 그리고 그 우리의 교집합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표현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침묵한다.
 지미킴展  '무정부주의적 언어'가 6월14일까지 예술공간 서:로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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