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의 작품에는 동물이 가득하다. 소와 닭이다. 그것들은 그냥 동물이기보다는 인간과 친숙한 가축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도시 생활을 하는 현대에 그것들은 생각만큼 친숙하지 않다. 어릴 적 닭이나 소가 나왔던 동화를 잊어버린 성인들은 대부분 그것들을 고기, 즉 단백질 공급원으로만 알고 있다. 아르멜 르 브라 쇼파르는 [철학자들의 동물원]에서 ‘집 근처에서 키우는 동물들’이라는 가축의 정의를 넘어서, 이제는 대규모 기업적 사육의 대상이 되어, ‘인간세계로 붙어 완전히 고립된 채 인간세계와 단절된 공포에 가까운 혼잡함 속에’ 갇혀 있다고 묘사 바 있다. 밝고 경쾌한 색과 리듬을 가지는 작품에서조차 비극적 분위기를 씻을 수 없는 이유이다. 김경원의 작품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지만, 막상 잘 모르는 그 동물들의 면모를 활용한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젖소의 얼룩이나 닭의 벼슬 같은 부위는 수 천 번을 반복해도 똑같을 수 없는 기이한 형태를 가진다.
얼룩과 얼룩이 엉키거나 벼슬과 벼슬이 엉키면 기이한 게슈탈트를 만들어내고, 보는 이의 심리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형되어 나타날 것이다. 또한 그것들은 작품에 따라 리좀처럼 줄줄이 연결되어 특정할 수 없는 보다 더 자유로운 형태가 되기도 한다. 얼룩이나 벼슬은 다른 부위에 비해 강한 질감을 가지며, 그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입체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소 닭보듯 한다’는 우리의 속담이 있듯이, 소재로만 본다면 소와 닭은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다. 말 그대로 관객은 소 닭 보듯이 작품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스펙터클의 시대에 얼마나 자극적인 것들이 우리의 눈을 공략하는가를 생각할 때, 소와 닭은 그 자체로 특이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체로 아름다운 축에 끼지 않는다.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예쁜 동물들은 얼마든지 있다. 소와 닭은 그림 한 장에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천 마리가 빼곡하게 자리하여 추상적 패턴이 되고 장관을 이루지만, 어떤 부분은 징그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기본적인 상황을 뒤집는 것이 김경원의 작품의 1차적인 목표이며, 작가는 그러한 불가능해 보이는 기획을 상당 부분 성공시킨다. 거기에는 잡아먹힐 뿐 아니라, 생물체로서의 자생성을 잃은 채 전염병에 옮아 대량 살처분되는 닭과 소의 비극적 모습보다는 밝은 모습이 두드러진다. 산뜻한 배경색을 가지는 동물들의 율동감 있는 배열은 경쾌하다. 그것은 고기의 절단면 등에서 나타나는 부분이 만들어내는 패턴이 아니라, 온전한 전체가 만들어내는 패턴이라는 점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작품들이 가득 걸려있는 전시장은 일단 거기에 투입된 막대한 노동력 때문에 놀라게 된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연동되듯이 한 작품이 아니라 여러 작품이 연동될 수 있으며, 단독의 조각작품이기보다는 그림이 삼차원으로 튀어나온 듯한 입체작품 또한 그러한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작품에 투여되었을 엄청난 노동력은 김경원의 작품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입체작품의 경우, 마릿수가 많지는 않지만 부피에 비해 묵직한 중량감을 부여했다. 그것들은 보기와 다르게 육중하다. 반면 어떤 것이 상품이라면 보기와 다른 이러한 낭비는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한 작품 제목 [Labor of learning]에서 암시되듯, 김경원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눈속임이 아니라, 밀도와 강도인 것이다. 밀도와 강도에서 나오는 의미는 특정 소재의 의미만큼이나 강하다. 잠시 다른 분야의 사회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삶은 예술이 다른 분야와 달라야 하는 이유를 매 순간 자문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중력적인 시공간 속으로의 초월을 지향하지 않는 이 작가는 일상, 또는 노동하는 삶에서 야기되는 반복을 작품으로 변주한다. 예술 속 반복은 차이가 있었다. 노동 같은 반복이지만 되돌아오는 지점은 같지 않다. 수천 마리의 동물은 한 화면에 집어넣는 작품의 주인공은 엄청난 편집증 환자는 아닐까.

그러나 그녀가 편집증 환자라면 미술대학 졸업 후 10여 년 간 여러 직종을 섭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직장생활이야말로 ‘그것만이 내 세상’이 아닌, 사회적인 마인드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5년에 대학원 진학을 계기로 본격적인 작업에 다시 몰두하면서 참여한 전시만 무려 18회임을 본다면, 원래 몰입과 실행의 강도가 매우 쎈 작가로 생각된다. 작업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겨난 이상 확실하게 한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면 굳이 어릴 적부터 미술을 해왔다는 사실에 질질 끌려다닐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37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첫 개인전을 하게 되었지만, 이 추세라면 금 새 ‘잃어버린 10년’은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예술에는 지름길이 없으며, 그 어떤 우회로도 풍부한 자산으로 만드는 잠재력이 있다. 그래서 환상적으로만 보이는 김경원의 그림에는 치열한 현실성이 담겨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현실 속의 환상, 또는 환상 속의 현실이다. 현실과의 동어반복, 아무런 필연성이 없는 유희가 무가치할 뿐이다. 다양한 삶을 살아왔던 작가의 이력은 작업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전시에서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소와 닭의 이미지는 몇 년 동안의 관심사일 뿐, 고착될 필요는 없는 소재이다. 어떤 생물체로 그 자체로 주목해보면 기이한 아름다움이 없지 않지만, 소와 닭의 경우는 인간 자신도 속하는 생물이나 동물을 넘어서 대량 생산되고 소비되는 하나의 품목이 되었기에, 작가의 선택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소나 닭들은 관심을 가질수록 회피하고 싶은 잔인한 현실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김경원의 촘촘한 동물 그림은 A4 한 장 크기의 생육환경 속에서 몇 개월 살지 못하는 닭의 현실을 떠오르게 한다. 분홍빛 거대한 젖통이 있는 젖소의 경우, 젖만 짜이다가 고기로 마감하는 현실이 가혹하다. 가축의 비참한 현실은 인간의 현실과도 관계된다.

난 멜링거는 [고기]에서 가난한 국가에선 부자 나라에 지속적으로 육류를 공급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소를 사육하는데 필요한 목장의 확대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고 고발한다. 난 멜링거에 의하면, 모든 다른 소비재처럼 고기도 가능한 한 저 생산 비용의 시장 법칙에 따른 중요한 생산품이 되었다. 고기로서의 일부분이 아닌 온전한 형태의 닭과 소는 그것들이 그런 취급을 당한 만큼 되돌려 놓고자 한 의지도 읽혀진다. 한 작품에 꼬박 몇 달이나 걸리는 작품들은 유제품을 좋아하는 아주 단순한 계기로부터 시작되었다. 화가들은 대체로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그리고 나면 좋아하게 된다. 작업을 통해 대상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것이다. 최초의 관심은 단순했지만, 갈수록 깊이 빠져드는 모든 것에는 예술적 면모가 있다. 학부에서 동양화과를 다녔으니 ‘점입가경’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 것이다.

김경원의 작품에는 수천마리의 소와 닭이 만들어내는 진기한 풍경이 있다. 수천마리의 소와 닭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배치되면서 다양한 서사를 이끈다. 조형적으로는 동물 한 마리 한마리가 마치 원자처럼 이합집산하면서 세계를 이루는 광경을 연출한다. 전시된 작품 속 소와 닭들은 한쪽 방향 만을 보고 있는데, 그것은 밀집 사육의 방식에 의해 한 방향만 보게끔 되어있는 상황을 암시한다. 그것은 불편한 현실이지만 전시된 작품들은 어둡지만은 않다. 풍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낙차가 있어야 한다. 즉 가벼운 것은 무겁게, 무거운 것은 가볍게 말이다. 방법론상으로 보자면 가벼운 소재를 노동집약적인 무거운 기법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작품마다 크기가 같거나 다른 측면 상들은 젖소와 닭의 특징을 잘 잡아낼 수 있다는 조형적 편리함도 있다. 종적 특징을 금 새 알아보게 하는 벼슬이나 얼룩무늬는 측면 상에서 극대화될 수 있다.
그에 버금가는 편의성을 줄 동물 소재로는 원래 납작한 어류 정도일 것이다. 김경원의 그림에서 복잡하게 조합된 부분만을 주목하면 무엇인지 모호할 정도로 추상적 측면이 있다. 기하학적 구성이 있는 작품에서는 같은 크기가, 좀 더 유동적인 구성인 경우에는 크기의 차이가 있지만, 한 방향 이미지는 변함이 없다. 발전이란 곧 생산력의 증대를 의미하게 된 현대에 한쪽 방향만을 향한 배치는 그 자체로 풍자적 메시지를 가진다. 정보화 사회에서 작품의 생산이란 전시장에서의 직접적인 만남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미지, 특히 디지털 기기에 맞춰진 축소된 이미지로만 볼 때 김경원의 작품은 회화같지가 않다. 하나하나 잘 그린 것도 있지만, 그것이 반복적인 배치를 통한 구성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것은 작가 말대로, ‘디지털 화면의 정지 되거나 복사된 상태로 멈춰지는 렉(lag) 걸린 모습’ 같은 일련의 패턴을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또는 확대해서 보면 ‘손으로 그려 만들어진 터치와 마띠에르로 인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작품 속 동물의 반복은 그것들이 하나의 개체이기 이전에, 상품처럼 대량 생산되는 면을 반영한다. 난 멜링거는 [고기]에서 고기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부터라고 말한다. 2차 대전 이후 본격적인 소비사회가 개막된 즈음이다. 오늘날 보편화 된 정보의 혁명도 비슷한 시기에 싹텃다. 전쟁은 대규모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일상에 편재한 전쟁같은 경쟁 또한 그러한 근본적인 진실을 함축한다. 대량 생산/소비의 덫에 걸린 생명과 대중은 비슷한 운명을 가진다. 과도함은 김경원의 작품의 첫인상이기도 하다. 붓을 가지고 심혈을 기울여 몇 달에 걸쳐 한 화면은 완성하는 일은 디지털 문화의 시대의 엄청난 복제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일이다. 생산의 관점에서 본다면 회화를 통한 이미지의 생산이란 고비용 저효율이다.
김경원展  '반복적 풍경'이 2월28일부터 3월6일까지  갤러리 이즈(Gallery IS) 1F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