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에 쫓겨 복장마저 간편함을 추구하는 시대다. 주문하는 즉시 나오는 패스트푸드처럼 최근 패션계에도 낮은 가격에 짧은 주기로 생산되는 의류브랜드, ‘패스트 패션’ 바람이 거세다. 자라, H&M, 갭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다. 그런데 의복문화에 ‘빨리빨리’를 주문하는 세태에서도 한복을 입어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을 것을 권하는 이가 있다. 한복 연구가 박술녀다. 그녀는 한복을 “마음으로 입는 옷”이라고 부르곤 한다.

박술녀씨는 충남 서천에서 7남매 가운데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한복을 몰래 입어보면서 한복을 알았다. 유난히 뛰어났던 바느질 솜씨는 인간 박술녀를 한복의 세계로 인도했다. “바느질로 헌 옷 깁는 일, 옷을 만드는 일로 밤 새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그녀다. 그렇게 자연스레 한복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게 됐고 한복 연구가 이리자 선생의 문하생으로 입문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서울 군자동에 작은 한복가게를 열면서부터였다. 1986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이었다. 군자동 시절은 박술녀에게 ‘반전’으로 기억된다. 각종 웨딩쇼, 연회 등 행사에 한복 협찬을 하면서 그녀의 손을 탔던 한복이 유명세를 얻었다. ‘박술녀’ 이름 석 자를 알린 건 덤이었다.

때문에 크고 작은 고비를 만날 때마다 박 씨가 빼놓지 않는 게 ‘군자동’ 이야기다. 힘들었던 시기에 꺼냈던 기억도 군자동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서울 광진구 군자동 열 평 남짓한 방에서 한복장사 하던 때에는 더 어려운 시기도 견뎠다”고 말한다. 박술녀는 군자동을 기점으로 성공가도를 달린다.

한복집 문을 처음 연지 20여년이 지났을 무렵인 2015년에 청담동지점을 오픈하고, 5년 후에는 4층짜리 신사옥을 마련하기도 했다. 단순하게 한복집의 규모만 놓고 보면 20년 사이에 15배 성장했다.

박술녀 한복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정받고 있다. 당대 최고의 톱스타들은 국내외 패션쇼가 열리면 ‘박술녀 한복’을 입는다. 결혼식이나 명절 같은 집안 행사마다 한복을 구입하기 위해 박술녀 한복을 찾는 스타고객도 있다. 과거 내한했던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 영화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같은 해외스타들이 그녀의 한복을 입고 아름답다며 찬사를 보냈던 일화는 유명하다.

최근엔 지난 5월에 열렸던 LPGA 볼빅 챔피언십의 초대 우승자인 ‘에라야 쭈타누깐’이 박술녀 한복을 입었던 게 화제가 됐다. 우승재킷 대신 박술녀씨가 디자인한 한복을 입는 게 이 대회의 전통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술녀 한복이 지닌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복으로 인정받게 된 비결에 대해 그녀는 “한복을 제외한 다른 인생은 포기하고 오로지 한복을 위해서만 살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한복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로 새벽에 출근하고 늦은 밤에 퇴근하는 삶을 반복해왔다. 가족들과 오붓하게 식사 한 끼를 같이 할 여유는 당연히 허락되지 않았다. 나이 쉰에 갑상선 암으로 투병했을 때에도 수술한지 이틀 만에 퇴원했다. 한복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서였다. 박술녀는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했다.

박술녀의 목표는 한복의 세계화와 대중화다. 그녀가 이를 위해 사극 협찬용으로 제공한 한복만 3천 벌이 넘는다. 그러나 세계화와 대중화는 그녀에게는 여전히 힘든 작업이다. 외국인에게 한복 입기는 단순한 체험에 불과하다는 게 그녀의 판단이다. 때문에 박술녀는 “한국인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한복을 입어야 우리 옷의 명맥을 이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술녀는 “우리 조상들이 단점을 보완해가면서 보존해온 유일한 문화가 한복”이라고 말한다. 한복에 대한 남다른 자긍심과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직업에 대한 애착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박술녀 한복이 명품이란 수식이 붙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다음은 일문 일답

1. 한복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표현하자면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제가 30년 바느질을 해오면서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한복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빛깔 덕분입니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2. 어떻게 한복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셨습니까?

어머니께서 생선장사를 할 만큼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꼭 친인척 결혼식에 갈 때는 몸빼 바지를 벗어놓고선 고운 한복을 차려입으셨던 기억이 있는데요. 결국 어려서부터 한복에 대한 꿈을 늘 가지고 살았어요. 그게 한복에 눈뜨게 된 계기이지 싶습니다.

3. 한복집을 차린 지 20여년이 지나서 사옥을 마련하셨을 만큼 한복연구가로서 남다른 성공가도를 달렸는데요. 성공 비결이 뭘까요?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한복 디자이너의 길이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잠자는 시간도 줄이고 가족과 평범하게 식사하는 소소한 행복도 포기하며 살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모래로 성을 쌓아놓은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아직도 심리적으로 안착한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스스로가 느끼는 위기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단아한 한복을 입기위해 박술녀를 찾는 분들께 지금도 최선을 다합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 라는 믿음을 굳게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항상 변함없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돈보다 자존심을 지키면서 한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많은 제안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한복을 대량으로 만들어 올 테니 한국에서 판매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죠.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한복은 한국인들이 입는 옷이거든요. 돈 보다 중요한 것이 있죠.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한복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4. 대단한 워커홀릭으로 보이십니다. 일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부탁드립니다.

제가 갑상선암 수술하고 호스를 꼽은 상태에서 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억을 하라고 하면 즐거운 기억보다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더 많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뼈가 아리는 아픔이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런 순간이 많았습니다. 이런 게 에피소드인지 모르겠지만요.

5. 유명인사들의 한복도 많이 만드셨는데요.

대한민국의 많은 스타는 물론이거니와 브리트니 스피어스, 아만다 사이프리드, 어셔 같은 많은 해외스타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의례적으로 ‘박술녀 한복’을 방문했습니다. 태국의 친나왓 총리도 저희 한복을 입으셨습니다.

6. 한복의 세계화, 대중화를 위해선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지요?

한복은 우리 조상들이 안 좋은 부분만 보완해서 남겨놓은 유일한 문화유산입니다. 우리가 조상님들이 입던 한복을 그대로 흉내 낸다고 해서 탓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했어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한복일 것입니다.우리 의복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려면 우리 국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일부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많이 사랑해주고 입어줘야 합니다. 한복은 후진국에서 만든 명품이 아니라 우리나라 이곳에서 한뜸씩 떠서 만든 우리민족의 ‘얼’과 ‘혼’ 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