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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연출 연극 천개의 눈
임민정 기자  |  lmj@woma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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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05  17: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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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대표 조선희)이 운영하는
서울시창작공간 남산예술센터와 ‘상상만발극장’이 공동제작하는 <천 개의 눈>이 오는 9월 4일(수)부터 9월 22일(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에 오른다.  

2012년 창작팩토리 지원사업 선정작인 <천 개의 눈>은 영웅서사, 미궁신화, 친부살해 신화, 인신공희(人身供犧) 모티브 등 동서양의 신화와 설화들을 바탕으로 인간이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인식과 그를 통한 부끄러움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영원한 너>와 <그림 같은 시절>의 정영훈 작가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마치 돌을 깎아 신화의 조각을 만들어내듯 빈틈없이 화려한 문체가 돋보이는 이 작품의 연출은 <영원한 너>로 이미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박해성 연출가가 맡는다. 기존의 연극성에 반하는 자신만의 연출스타일을 구축하며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박해성 연출가는 “오랜만에 농도 짙은 연극성을 느낄 만한 작품이 될 것”이라며 연출방향을 밝혔다. 정영훈 작가의 특기인 유려한 문장과 화려한 문체가 돋보이는 ‘말의 연극’이면서, 한편 ‘미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건을 큰 장면전환 없이 여백의 미를 살려야 하는 ‘침묵의 연극’을 들려주어야 하는 아이러니를 박해성 연출가는 남산예술센터의 공간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해결하려 한다.

자로왕의 왕국은 늙고 병든 왕국이다. 외세의 침략 속에 변방호족까지 이 외침에 편승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도성을 향하고 있다. 자로왕 곁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는 환관 미사는 왕의 투항을 권고한다. 자로왕은 20년 전 혼탁한 세상에 홀연히 나타난 먼 나라에서 온 영웅이었다. 호족들은 그를 이용해 왕을 제거하고 권력을 차지하려 했으나, 자로는 왕을 죽이는 대신 왕의 아들이었지만 호족들에 의해 미궁에 갇혀 인육으로 연명하며 반인반수 괴물이라는 소문 속 주인공 타로를 무찔러 민심을 얻고자 미궁으로 떠난다. 타로를 무찌르고 살아 돌아왔지만 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로는 왕이 된다. 그런데, 이제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타로처럼 미궁으로 떠나가야 하는 자로왕은 20년 전 타로를 처치할 때의 진실을 말한다. 사실 그는 괴물 타로를 영웅처럼 물리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타로의 미궁 속에서 생명을 구걸했으며, 그리고 스스로 죽기를 선택한 타로의 목을 베었을 뿐이었다. 환관 미사는 이제 자로가 타로의 미궁으로 향할 때라면서 호족들에게 항복할 것을 권고하지만 자로는 항복하지 않는다. 자로는 장수 여강에게 자신을 베라 하고, 여강은 마치 자로가 타로를 베었듯이 자로를 벤다. 환관 미사는 이제 자로왕 대신 미궁으로 향한다. 그는 이 미궁에서 눈을 감는다.  

환관 미사를 통해 들려주는 말의 연극이자, 미궁이라는 침묵의 공간 

“듣는 자이며 말하는 자, 나 미사는 응당 자로왕의 심중을 헤아려 그네들에게 말을 내어야 했습니다. 허나 나는 자로왕의 이야기가 무엇을 예비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끝낸 자로왕의 침묵이 길어질 때야 비로소, 환관된 자의 본능으로 이제 닥쳐올 격랑에 몸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움직일 수도 말을 낼 수도 없었습니다.” 

<천 개의 눈>에서 자로왕이 갇혔던 미궁은 세상이며, 세상의 구조이고, 구조의 숙명성이고, 거짓된 이데올로기이고 치욕의 삶의 공간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치욕의 삶의 공간에서 발버둥치는 것을 바라보는 공간이기도 하다.

항상 누군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이를 장악한 자가 승리한다. 승리한 후일지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삶을 치욕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 치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치욕의 말들, 혹은 치욕을 가리기 위해서 하는 말들, 이데올로기들의 거짓된 말들이 세상을 채우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어둠 속의 시선이 있다. 베어도 베어지지 않는, 치욕을 일깨우는 시선이 있다. 자신을 베어 고통스럽게 이 치욕을 극복하고 삶이 삶이기를, 인간이 인간이기를 선택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고통 속에서 인간이기를 선택한 이들의 침묵의 언어를 연극 <천 개의 눈>을 통해 들려주고자 한다.

극장 안에서 관객은 단지 ‘연극을 관망하는 자’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미사의 입을 통한 자로와 타로, 그들의 수치와 치욕의 역사를 바라보는 ‘천개의 눈’의 하나로 역할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던 간에 이데올로기 안에 살면서 끄나풀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깨닫게 되면서 치욕을 일깨우는 부릅뜬 눈이 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길 잃은 눈들이 바라보는 극장이 바로 미궁이며 세상이다.  

자, 이제 이 미궁을, 세상을, 극장을 어떻게 나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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